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루후지 나오미치 (문단 편집) === 데뷔 전 ~ [[전일본 프로레슬링]] ( ~ 2000) === [[파일:고3 마루후지.jpg|width=50%]]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형이 사온 주간 프로레스의 표지에 실렸던 [[로드 워리어즈]]를 보고 프로레슬링 팬이 되었고, 중학생 때부터 프로레슬러를 지망하게 되었다.[*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나중에 "달리 되고 싶은 직업도 없었고, 머릿속엔 프로레슬링 밖에 없었습니다. 당시는 [[전일본 프로레슬링#s-2.2|전일본 사천왕]]([[미사와 미츠하루]], [[코바시 켄타]], [[카와다 토시아키]], [[타우에 아키라]])과 [[투혼삼총사]]([[무토 케이지]], [[하시모토 신야]], [[쵸노 마사히로]]) 시대.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습니다. 신일본도 저녁에 방영되고 있었고, 전일본도 텔레비 사이타마에서는 오후 6시에 재방송이 있었고요. 그 중에서도 [[미사와 미츠하루|미사와]] 씨와 [[무토 케이지|무토]] 씨는 스타일적으로 제가 목표로 삼은 사람으로, 저런 프로레슬러가 되었으면 하고 있었습니다."라고 회고했다.] 중학교 2학년 때 진로 상담에서는 프로레슬러가 된다라며 고교 진학을 거부했지만, 부모로부터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하라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에 입학한다. 고교 시절에는[* 1년 선배로는 유도부 소속이던 사이타마현 [[사야마시]]의 현역 시의원인 '1인 신센구미' [[히지카타 류지]](土方隆司)가 있고, 레슬링부 동기로는 부상으로 프로레슬러 데뷔를 포기한 신일본 메디컬 트레이너 니이지마 에이이치로가 있다.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데뷔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니이지마 에이이치로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밝힌 적도 있다.] 아마추어 레슬링과 농구를 했으며, [[인터하이]] 출전 경험도 있다. 그와 동시에 [[타이거 마스크(프로레슬러)#s-2.1|사야마 사토루]]의 슈퍼 타이거 짐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도중 고2때 킹덤[* UFC식 실전 룰을 지향하던 단체. 당시 마루후지 나오미치가 종합격투기에도 관심이 있어 입단 시험을 보았다.]의 입문 시험에 합격했지만 단체가 1년만에 붕괴되어 입단이 좌절되었으나, 고3때 지인이 당시 전일본 사장이였던 [[미사와 미츠하루]]와 아는 사이여서 소개를 해 준 것을 계기로 1주일 동안 도장에서 체험 훈련을 받은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이 내정되어 졸업하자마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다. 입단 때 부터 기대를 받아 입단 5개월 만인 1998년 8월 28일, [[아이치현]] 오카자키시 체육관에서 [[카네마루 요시노부]]와 데뷔전을 치르며 커리어를 시작했으며,[*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신인들은 기본기 밖에 쓸 수 없으나, 당시 단체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스승 미사와 미츠하루의 "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봐라"라는 조언 겸 강력한 허락에 힘입어 데뷔전 때부터 공중기를 사용하는,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경기를 보여준다. 이후 새파란 신인인데도 [[자이언트 바바]]의 어깨에 올라타 공중기를 쓰는 모습까지 보여준 적이 있다.] 그 후 우상인 미사와 미츠하루의 제자가 되어 심부름꾼을 맡으며 미사와의 스테이블인 언터쳐블 소속이 되어 활동하는 한편, 1999년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[* [[TAKA 미치노쿠]]의 스승이기도 한 일본 주니어 헤비급의 전설 '''[[더 그레이트 사스케]]'''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세운 단체.]에서 열린 식스 맨 태그 팀 매치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두러내기 시작했고, [[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]]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. 2000년 3월에는 1년 후배이자 이후 숙명의 라이벌이 될 [[KENTA]]의 데뷔전 상대가 되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